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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 다시 읽기

작성자 공병임(ip:)

작성일 2010-01-13 22:49:14

조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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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가로수의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늦가을을 수놓는 11월이다.
여름날의 싱그러움과는 달리 가을이 주는 풍요함 은 이맘때라야 느낄 수 있듯이 결혼의 계절이기도 하다.


나도 11월에 신부가 되었다.
산골생활에 그 날이 그 날 같지만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한 기념일이 다가오면 나이를 잊은 채 막연히 기념일을 기다려본다. 행여 꽃 한 송이나 시집이라도 한권 준다면 얼마나 가슴 뭉클할까 김치 국부터 마시며 말이다. 처음엔 우리도 이렇게 무덤덤 하진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기념일 횟수가 많아지면서 이맘때가 기념일이지 하고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큰아이가 나를 놀릴 때면 하는 말이 있는데 엄마는 분명히 시골 다방에서 아빠랑 선을 봤을 거란다. 내가 피식 피식 웃기만 하면 날 아주 산골댁 취급을 하곤 했다. 적어도 난 선보고 결혼할 정도로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해 보지만 선 봤다고 사랑을 안한 건 아닐 건데 뜬금없이 녀석이 맛선 타령을 하며 내 구시대적 생각을 제지하려 한다.


맞선도 나름대로 고전적인 교제 방법이고 예전의 연애편지 시대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들이 알 수 있을까. 연애편지라는 말까지도 그렇게 떨리고 이상하게 들리던 때 들키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듯 꼭꼭 숨기고 설레었는지 , 밤새워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답장이 오기를 몇 날 며칠 기다리는 애틋함 같은 거 그런 순수한 사랑을 짐작 해 볼 수 있을까.


남편이랑 나는 연애편지로 사랑을 키운 사이다.
그의 첫 번째 편지엔 뒷밭에 사과나무를 20주 심었다는 말과 그 나무 자라 사과 익을 때 풍경을 나름대로 적어 보냈는데 얼마나 멋지고 시인처럼 보이던지 실은 처음 편지 때부터 좋은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수없이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그 흔한 사랑이란 말은 못해봤다.아니 우린 사랑이란 말이 너무 크고 소중해서 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혼 무렵 "보고싶은 이에게"란 첫 구절이 사랑이란 말보다도 가슴 설레게 다가 왔으니 천생연분이랄까.


그렇게 애틋한 사랑을 나누며 결혼했는데 마치 오래된 영화 한편 기억하는 거 보다도 못한 대화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을 하긴 했었나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으니까 결혼했지 라며 우스개 말을 할 땐 세상을 다 살아온 도인 같은 느낌도 받으며 말이다.


가끔 연애편지 주고받던 때를 떠올려보면 아득한 세월 어딘가에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잊어버리고 온 듯한 허전한 맘이 든다. 아무것도 없어도 같이만 있으면 행복하던 신혼시절을 회복하려면 빛 바랜 연애편지를 다시 꺼내 보아야 하겠다. 아니 "보고 싶은 이에게"란 첫 마디로 출장간 그이에게 연애편지를 써 보면 어떨까.
궁상맞은 생각의 실타래를 감았다 풀었다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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